연재 (46) 썸네일형 리스트형 유리창 너머의 봄 - 8화: 지나간 봄날들 하준은 입술을 다문 채 긴장감이 맴도는 공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해림을 스치고, 다시 도윤에게로 옮겨졌다. 도윤은 한 손에 들고 있는 캔버스를 천천히 내렸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의 발소리가 묘하게 부드러웠지만, 그 발걸음이 뱀처럼 조용히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이 시간에 공원이라니. 우연이 겹치네요.” 도윤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면서도, 그의 눈은 날카로웠다. 해림의 손끝이 움찔하며 스케치북을 움켜잡았다.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잠시 고개를 숙였다.“그러게요.” 하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저도 여기서 도윤 씨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그 짧은 말이 칼날처럼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갈랐다. 하준의 시선은 도윤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는 해.. 유리창 너머의 봄 - 7화: 그림을 그리던 소녀 해림은 오늘따라 유난히 가벼운 운동화 끈을 다시 묶으며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 한쪽에 얇게 흩어진 구름. 바람은 봄과 여름 사이를 맴도는 듯 어딘가 습기를 머금은 채였다. 그녀는 손끝으로 이마 위 머리카락을 가만히 넘기며 걸음을 옮겼다. 도윤의 스튜디오를 나선 후, 그 사진들 속에서 묘하게 끌어당기던 감정은 아직도 가슴 어딘가를 찌르는 기분이었다.'왜 하필 나였을까.'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내내 진지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그의 눈빛과 생각들. 그리고 해림을 향한, 그 사진들 너머의 무언가.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분명히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의식적으로 근처 공원의 방향으로 이어졌다. 늘 걷던 익숙한 길목. 그러나 오늘만큼은 평소와는 다른 .. 유리창 너머의 봄 - 6화: 갈등의 씨앗 카페 안은 잔잔한 음악과 사람들의 낮은 목소리로 가득했다. 도윤은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습관처럼 들려 있는 카메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수많은 흔적들. 하지만 그의 눈길은 유리창 너머를 향했다.해림이 카운터 안쪽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포니테일로 단정히 묶여 있었지만, 여전히 몇 가닥이 얼굴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이마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도윤은 그런 사소한 장면마저도 사진으로 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이 광경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저 순간은 그녀의 것이다.' 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강도윤 씨.”카운터 너머에서 해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잔을 닦으며 그를 직접 마주 보지 않았다. .. 유리창 너머의 봄 - 5화: 지하준의 등장 도윤은 카페 맞은편 골목 끝에 서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창밖을 향했다. 낮은 창틀 너머, 해림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카운터 안쪽에서 움직이는 그녀의 손길은 조심스러웠고, 얼굴엔 조금의 힘겨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그녀의 동작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참 이상하다. 왜 이렇게 눈이 가는 걸까.' 그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래봤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그때, 낯선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긴 코트 자락을 흔들며 카페로 들어서는 남자. 도윤은 본능적으로 그를 따라 눈길을 옮겼다. 남자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가더니, 마치 이곳에 익숙한 듯 자연스레 해림에게 다가갔다. 금세 해림의 입가에 작은 웃음이 떠올랐.. 유리창 너머의 봄 - 4화: 민서영의 조언 서울의 늦은 오후, 하늘은 흐린 듯 말갛게 개인 상태였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이 묻어나는 거리의 풍경 속에서 강도윤은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윤해림이 내다 준 커피가 쥐여 있었지만, 입술에 닿은 적 없이 식어가고 있었다.노트북 화면에는 사진이 여러 장 띄워져 있었다. 지난 작업물들이었다. 그는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사진을 넘기다 말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바람에 흔들리는 간판이 보였다. 그 너머로 서성이는 사람들, 그 움직임 속에서 잠시 멈춘 듯한 공간과 시간이 느껴졌다.‘왜 여기에 앉아 있는 거지.’그는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늘 자유롭고 무심한 듯 행동해왔던 그였지만, 요즘 들어 자주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기분이었다. 해림이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 그리고.. 유리창 너머의 봄 - 1화: 봄비 속의 첫 만남 카페 문이 살짝 열렸다. 봄비 냄새가 스며들며 실내 공기를 새로 덮었다. 강도윤은 무심코 렌즈를 닦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빗소리가 작게 배경음처럼 들리는 가운데, 그녀가 들어왔다. 윤해림. 창가에서의 우연한 스침 이후, 또다시 그녀와 마주친 셈이었다.그는 그녀를 알아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모른다는 듯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카운터로 향했다. 해림이 주머니에서 똑, 동전을 꺼내며 메뉴판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도윤은 그 장면을 지켜보는 자신을 의식했다.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까.’ 단순히 카메라에 우연히 담긴 모습에서 시작한 호기심이 묘한 긴장감으로 변하고 있었다.“따뜻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해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카운터 너머로 흘렀다. 바리스타가 주문을 확인하며 계산을.. 유리창 너머의 봄 - 3화: 창가 자리의 손님 도윤은 해림의 말에 짧게 웃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녀 앞까지 천천히 걸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해림은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손끝엔 아직도 작은 분무기가 들려 있었다. 화분에 물을 준 흔적으로 새끼손가락 끝에는 물방울이 조금 남아 있었다."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요. 사진 찍으러 좀 돌아다녔는데, 딱 맞는 자리가 떠오르더라고요.""하필 저희 카페요?"해림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윤은 그 표정이 못내 귀엽다는 생각에 미소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기 온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야?'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대답 대신 그녀의 반응을 흥미롭게 관찰했다."자리가 괜찮아서요. 창가 쪽이 특히 좋더라고요," 도윤이 천천.. 유리창 너머의 봄 - 2화: 서툰 인사 카페 앞에 서 있던 강도윤은 익숙한 문양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이른 오후의 햇살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채 건물의 벽에 부드럽게 스미고 있었다. 어제 봄비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약간의 습기가 공기에 배어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섰다. '들어갈까, 말까.' 문턱 너머로 느껴지는 미묘한 긴장감이 발목을 붙잡았다.어제의 그녀, 윤해림.아직도 그 말이 귓가에 선명했다. "그 순간을 이해해야 한다."도윤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었다. 사진을 찍으며 매번 그는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 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정말 그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겉모습을 흉내 낸 것뿐이었는지, 이제는 의심스러워졌다.문을 열었다.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특유의 원두 향기가 그를 맞았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이전 1 2 3 4 ··· 6 다음